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나라 공산주의자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신정국가가 아니다. 종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가 법과 제도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통치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묶인 자가 풀려나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고, 함께 먹고 함께 사는 생명의 현실이다.
우리가 말하는 공산주의도 국가 숭배가 아니다. 당 독재, 강제수용, 종교탄압, 개인숭배, 검열, 비밀경찰, 폭력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가가 하나님 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어떤 체제도 인간의 죄성을 자동으로 해결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적 사유재산 절대주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삶, 땅, 노동, 기술, 주거, 의료, 데이터, 에너지, 생산수단이 소수의 이윤을 위해 조직되는 질서를 거부한다. 다수가 불안과 부채와 소진 속에서 살아가고, 소수가 그 불안을 통해 부를 쌓는 질서를 죄로 본다.
우리의 공산주의는 마르크스보다 먼저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우리의 경제관은 계급증오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공동 소유와 필요 중심 분배, 광야의 만나, 희년의 회복, 예언자들의 정의, 예수의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을 오늘의 경제 질서 안에서 다시 묻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님나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무신론 체제, 당 독재, 실패한 국가, 반기독교적 역사에만 넘겨주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복음을 자본주의, 성공주의, 체면, 안정, 사적 축적의 장식물로 넘겨주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 고백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다고 믿는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소유주가 아니라 청지기다. 재산은 절대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부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부는 공동체, 자연, 역사, 노동, 지식, 인프라, 제도, 은혜 위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부는 개인의 손댈 수 없는 성역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믿는다. 인간의 가치는 생산성, 임금, 직업, 학력, 시장가치, 효율성, 건강, 쓸모로 측정될 수 없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도 존엄하다. 아이, 노인, 장애인, 병든 사람, 우울한 사람, 실업자, 실패한 사람, 일할 수 없는 사람도 공동체의 짐이 아니라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람을 이윤을 낼 때만 가치 있는 존재로 보는 사회는 단지 경제적으로 잘못된 사회가 아니다. 영적으로 병든 사회다.
우리는 죄가 개인의 마음에만 있지 않다고 믿는다. 죄는 제도와 구조 안에도 자리 잡는다. 탐욕은 개인의 악덕일 뿐 아니라 시장의 원리가 될 수 있다. 착취는 노골적인 폭력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임금, 임대료, 부채, 플랫폼, 특허, 데이터, 알고리즘, 독점, 상속을 통해 세련되게 작동할 수 있다.
우리가 거부하는 것
우리는 소수의 부가 다수의 불안 위에 세워지는 질서를 거부한다.
우리는 생존을 볼모로 노동을 강제하는 경제를 거부한다. 인간이 살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몸과 정신을 시장에 팔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노동은 소명일 수 있다. 그러나 생존 강박은 저주다.
우리는 생산수단의 사적 독점이 신성한 권리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개인의 집, 물건, 도구, 사적인 삶, 기억, 취향, 창작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타인의 노동과 생존을 지배할 수 있는 소유다. 지대와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소유다.
우리는 생명의 기반이 되는 것들의 사유화를 거부한다. 땅, 물, 주거, 의료, 교육, 에너지, 통신, 교통, 데이터, 인공지능, 자동화 생산은 소수의 이윤을 위해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국가공산주의의 실패도 외면하지 않는다. 당 독재, 강제 집산화, 종교탄압, 검열, 비밀경찰, 개인숭배, 수용소, 강제 몰수, 인간 생명의 수단화는 하나님나라와 무관하다. 그런 체제는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썼을지라도 우리가 따르는 길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말하는 자유도 그대로 믿지 않는다. 굶을 자유, 쫓겨날 자유, 빚질 자유, 해고될 자유, 기계에 대체될 자유, 플랫폼에 감시당할 자유를 참된 자유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시장의 우상화와 국가의 우상화를 모두 거부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경제
우리는 필요에 따른 분배를 지향한다.
각 사람의 능력은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기 위한 은사다. 각 사람의 필요는 개인의 수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이다. 공동체는 많이 가진 사람의 자선을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두가 살 수 있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우리는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와 민주적 통제를 지향한다. 이것은 모든 물건을 국가가 가져간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생명의 기반이 되는 생산수단을 소수가 사적으로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양한 공동화의 방식을 인정한다. 노동자 협동조합, 공공 소유, 지방자치 소유, 토지 신탁, 공공주택, 공공의료, 공교육, 사회 배당, 기본소득, 플랫폼 협동조합, 데이터 공동자원, 오픈소스 인프라, 교회 공동기금, 상호부조 네트워크는 모두 하나님나라 경제를 향한 불완전하지만 실제적인 실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분배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정의라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남는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질서를 만드는 것이 정의다.
우리는 경제적 지배가 끝나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도 땅, 자본, 기술, 부채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생존을 붙잡고 흔들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능력이 우월함이 아니라 은사가 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필요가 수치가 아니라 책임이 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일이 강제가 아니라 참여가 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안식이 특권이 아니라 권리가 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풍요가 독점되지 않고 공유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기술, 자동화, 그리고 기술 공동자원
우리는 기술 발전이 인간을 불필요한 고역에서 해방할 가능성을 본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공장, 소프트웨어, 물류 시스템, 재생에너지, 생명공학, 네트워크 기술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노동에 묶이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열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기계가 소수에게 소유된다면 자동화는 해방이 아니라 대량 실업과 극단적 불평등을 낳는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사람의 언어, 지식, 예술, 행동, 노동 위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열매가 소수 기업과 주주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자동화의 열매는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술 공동자원이다. 기술 공동자원은 인공지능, 데이터, 플랫폼, 자동화 생산, 과학 지식, 디지털 인프라를 소수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모두의 생명과 안식을 위한 공동의 자원으로 보는 관점이다.
기술 공동자원은 단순히 코드를 공개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무료로 쓰게 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공동 소유, 민주적 운영, 공적 책임, 지속 가능한 유지관리, 공정한 분배, 지배로부터의 보호를 포함한다.
기술은 새로운 지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은 사적 제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는 기업이 인간의 삶을 캐내는 보이지 않는 광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은 책임 없이 노동자, 소비자, 시민, 아이들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기계가 부를 생산한다면 모든 사람이 그 부를 나누어야 한다. 자동화가 필요한 노동을 줄인다면, 그 혜택은 시간, 안식, 주거, 의료, 교육, 예술, 예배, 공동체, 돌봄, 생존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모든 노동의 폐지를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연구하고, 돌보고, 창작하고, 가르치고, 고치고, 판단하고, 행정하고, 공동체를 세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존을 위한 강제노동이 사라지는 세계를 지향한다. 일은 처벌이 아니라 참여가 되어야 한다. 노동은 착취가 아니라 소명이 되어야 한다. 안식은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여야 한다.
교회에 대하여
교회는 이 선언을 말로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하나님나라 경제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부족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를 향해야 한다. 헌금은 건물과 행사와 조직 유지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교인들이 부채, 월세, 의료비, 실업, 외로움, 굶주림에 짓눌리는 동안 교회가 규모와 체면만 지킨다면 그것은 복음의 경제가 아니다.
교회는 공동기금, 부채 탕감, 식사 공동체, 주거 지원, 의료비 지원, 실업자 지원, 창작자 지원, 육아와 노인 돌봄, 협동조합, 공동구매, 지역경제 회복을 통해 실제로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부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는 단지 더 많이 기부하라는 요청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의지해온 소유 질서, 투자, 상속, 노동관계, 안전망을 복음 앞에서 다시 보라는 부름을 받는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중심에 가까운 증인이다. 교회가 가난한 자를 돕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중산층과 부자의 안정과 체면을 보호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경제를 배신한 것이다.
정치와 권력에 대하여
우리는 신정국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하나님나라로 착각하지 않는다. 하나님나라는 정당, 국가, 군대, 경찰, 관료제, 시장, 교단 권력 중 어느 것과도 동일하지 않다. 하나님나라는 선거로 완성되지 않고, 폭력으로 탈취되지 않으며, 정책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은 경제와 정치에서 중립일 수 없다. 가난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정책 앞에서 중립은 강자의 편이다.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법 앞에서 침묵은 동조다. 시장이 약자를 짓밟을 때 교회는 그것을 자유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이며 책임 있는 방식으로 경제 구조의 전환을 추구한다.
공동 소유는 중앙집중 권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공적 권력은 투명해야 하고, 제한되어야 하며, 책임을 져야 하고, 분산되어야 한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양심과 자유를 짓밟는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주의, 시민적 자유, 종교의 자유, 노동자의 권리, 지역 자치, 투명성, 반부패 장치, 독립된 법원, 결사의 자유, 반대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유 없는 공산주의 사회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경제 정의 없는 자유 사회도 참된 자유가 아니다.
우리의 선언
우리는 말한다.
인간은 시장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노동자는 비용이 아니다.
가난은 개인의 실패만이 아니다.
부는 절대권리가 아니다.
소유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윤은 섭리가 아니다.
시장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국가는 구원자가 아니다.
기술은 생명을 섬겨야 한다.
자동화는 안식을 섬겨야 한다.
데이터는 공동선을 섬겨야 한다.
기계의 열매는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풍요로운 세계에서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
빈집이 있는 세계에서 누구도 집 없이 살아서는 안 된다.
의학 지식이 있는 세계에서 누구도 치료받지 못해 죽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이윤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자본주의의 종교적 장식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복음은 몸과 밥과 집과 노동이 불의에 짓눌리는 동안 사적인 구원으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만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지금 여기서 몸과 밥과 땅과 노동과 시간과 부채와 기술과 집과 식탁과 이웃과 경제 안에 드러나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나라 공산주의자라고 말한다.
우리는 국가를 숭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폭력을 구원으로 믿지 않는다. 우리는 제도만으로 인간이 의로워진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우리는 양심을 폐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념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소수가 소유하고 다수가 생존하는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풍요가 불안을 만들어내는 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소유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면서 노동자를 대체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늘을 설교하면서 땅의 착취를 축복하는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유재산이 인간 생명보다 더 신성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변화 안에서, 공동체의 훈련 안에서, 제도의 개혁 안에서, 하나님나라의 경제를 미리 살아가고자 한다.
소유보다 생명.
이윤보다 필요.
경쟁보다 공동체.
착취보다 안식.
독점보다 공유.
자본보다 사람.
국가보다 하나님나라.
그리고 모두에게 충분한 삶.